단순한 그림인데 풍부한 감성이 넘친다. 10대 소녀부터 중장년층 아저씨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작은 삽화,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리는 ‘연민의 화가’로 유명한 이수동(48)은 그래서 더욱 갈채를 받는다. 그의 전시 때면 조용하던 화랑이 소란스러워진다. 여학생들이 몰려와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어머!, 어머나!, 여성들의 호들갑스러운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연예인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관객을 속이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 그대로다. 그러면서도 깊고 서늘한 그리움이 간절하다. 잃어버린 것과 결핍된 것을 표면 위로 불러오는 환영의 기술자다.

꽃 구름 나무 들 섬 의자 연인…. 세상 모퉁이를 비추는 달빛 아래 손톱만한 사람들의 고만고만한 날들을 환장할 것처럼 예쁘고 아련하게 담아놓았다.

올 한해 행복하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서 일까. 이번 작품은 더욱 더 화사하고 곱다. 군더더기 없는 화사한 그림은 딱딱하고 오래 휘어진 추억을 세우며 감정을 쿡 건드린다.

“나는 좋은 글이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며 말랑말랑한 감성을 자랑하는 그는 고객들에게 만년필로 꾹꾹 눌러 감사 편지도 쓴다.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 포스터를 그리고 또 영화 ‘숨’의 타이틀을 써 화제가 됐다. 글씨 또한 그림처럼 방실방실해 이미 ‘이수동 글씨체’로 유명하다. 백화점 현수막, 아이스크림 포장지, 수첩, 달력 등 대중성에서 그를 따라올 작가가 드물다.
“그림은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5일부터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19번째 개인전을 여는 작가를 만났다. 이번 전시는 1,2부로 나눠 열린다. 5∼12일 큰 그림전(30∼200호크기)을 열고 13∼20일 작은그림전(1∼15호)을 연다. 작품 값도 올 초 25만원에서 호당 40만원으로 올랐다. 노화랑측은 “수요 공급 원칙에 의해 작품값이 오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시가 꽤 길고 규모도 크다. 몇점이 출품되나.

▲이번 전시에는 약 70여점이 선보인다. 1,2부로 나눠 열리는 것은 관객들을 배려해서다. 지난 5월 서울 국제아트페어(KIAF) 때 2시간 만에 작품이 모두 팔리면서 얼떨떨했다. 그 같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에게 그때 감동과 고마움을 나누어 주고픈 마음이다. 특히 젊은 여성고객들을 위해 작은 소품을 많이 마련했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컬렉터층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의외로 남자 고객들이 더 많다. 이들은 술친구이기도 하면서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내왔다. 80년대부터 만난 고객중에는 말단 공무원에서 지금은 정부 고위직에 오른 분도 있고 금융회사 회장, 판사도 있다.

―옥션과 인사동화랑가에 작품이 많이 등장했던데.

▲하하, 옛날 작품까지 옥션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뜨긴 떴나보다 했다. 또 실제 가격보다 엄청난 가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그래서 딸들(작품)을 더 챙기고 있다. 물감도 더 두껍게 칠하고 구성도 더 고민한다. 이왕 시집보내는 것 짱짱하게 챙겨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항상 노화랑하고만 전시한다.

▲전속은 아니지만 17년째 전시를 한다. 노화랑과는 인연이 깊다. 92년이었다. 노 대표가 대구에 있는 내 작업실에 왔다. 그림을 보더니 전시 한번 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그림을 몇 점 가져갔다. 액자가 있는 그림이었는데 액자를 뜯고 그림만 가져가는 게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림이 안 팔리니까 오만일이 다 생기는 구나.” 그런데 그림이 다 팔렸다. 당시 10월에 연 개인전에서 26점중 23점이 판매됐고 980만원을 받았다. 내게는 지금 1억원보다 더 큰 돈이었다. 노화랑은 무명의 나를 스타작가로 만든 곳이다. 노 대표에게 늘 감사하다.

―예전 그림은 지금보다 어둡던데 지금처럼 예쁜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게 됐나.

▲10년 전이다. 친구 한 명이 그림을 사서 거실에 걸어두었는데 그날 밤 일이 생겼다. 아이가 밤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그림을 보고 무서워 울었다면서 친구가 그림을 바꿔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충격을 받았다. 2년 동안 과도기였다. 그 이후 사람 크기가 줄어들고 자연을 담아 감정을 표현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자신은 어떤 작가라고 생각하는가.

▲가수로 치면 나는 신승훈 같은 스타일이다. 김현식 스타일을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정말 행복하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연봉 1억원만 돼봤으면 했는데 이젠 소원도 이뤄졌다. 작업실도 호수공원이 보이는 좀 더 널찍한 곳으로 옮겼고 자신감도 생겼다. 다음 작품이 어떻게 변할 것이냐고 묻는데 그건 나도 모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다. 지금 이 스타일에서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