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 기원하던 십장생도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그림”

“건강, 장수의 상징물 10가지가 담긴 십장생도는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그림이니 밝아야지요. 한일병합 전까지 많이 그려 민가를 장식했던 전통의 십장생도는 염료 문제로 밝은 색을 내기 어려웠어도 어둡지만은 않았어요.”

민속놀이, 전국의 명산, 동양 건축 등을 소재로 작업해온 오승우(77) 화백이 새롭게 주목하는 소재가 전통의 십장생도다. 국내 서양화단의 거목이자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개척했던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장남이며 화가 오승윤(1939~2006)의 형인 오씨는 호남 미술명문가를 대표하는 화가. 사실적인 화풍을 펼쳐온 그는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월26일~3월10일 열리는 7년 만의 개인전을 통해 ‘신 십장생도’를 발표한다.

왜 ‘십장생도’인가 = 장수와 길상의 염원이 담긴 십장생도에 ‘오래 살아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1965년 국전 출품작의 제목이 ‘십장생도’였다. 본격적으로 십장생도를 그리게 된 것이 2001년 동양 건축을 그린 ‘동양의 원형전’ 이후다. 한국화 쪽에서 김기창 화백이 십장생도를 몇점 그렸을 뿐, 주목하는 사람 없는 십장생도를 나만의 현대감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흥미로우면서도 어려웠다. 예술원회원전 등 단체전에 한두점씩 출품해봤다. 자연의 선생이 이르는 대로 그리던 사실주의 작품과 달리 초현실적 추상화에 가까운 십장생도는 고민하며 그려야 할 대상이었다. 여러 점을 동시에 그리다 일곱살짜리 손녀에게도 어떤 게 좋으냐고 묻기도 했다.

서양화와 전통 소재의 만남 = 서양화가인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선 그림이라면 서양화만 알았다. 차츰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30세 전후로 서양화 재료로 절, 불상부터 민속놀이, 절구질, 쟁기질 등을 그렸다. 한때 전쟁, 산업 등 정부 기록화 작업을 10년여 했고, 50대 들어 13년여 국내 명산을 찾아다녔다. 그후 동양의 원형으로서 중국을 비롯해 동양 건축을 화폭에 담았다. 중국과 수교 전 베이징(北京) 자금성에 갔을 때 한눈에 느낌이 왔다. 동양 건축을 접하면서 서양에 못지않은 동양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 평생 한 주제에 매달리는 작가도 있지만, 난 10년 정도 한껏 그리다보면 지루해지고 벗어나고 싶다. 십장생도 그 이후는 무엇을 그릴지…. 꽃과 여인도 관심 있는 소재다.

호남 미술명문가의 화업 = 지금도 호남에선 내 이름보다 ‘오지호의 장남’, ‘오승윤의 형’으로 불리지만 영예롭게 생각한다. 부친은 미술하는 두 아들에게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도리를 이르셨다. 약주 드시면 한 말씀하시던 부친은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다, 과학 철학을 두루 알아야 한다고 독서를 강조하셨다. 그러나 난 시력문제로 신문 읽기도 어려우니 독서가 힘들다. 그 대신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 오지로 여행다니며 많이 보고 느끼려 노력해왔다. 동공과 망막이 약해 실명 위기까지 갔다가 여동생이 살던 독일서 1986년 이후 일곱차례 수술 끝에 그림 그릴 시력을 되찾았다. 데생력도 좋았던 동생은 왜 그랬는지 2년 전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내 두 아들(병욱·상욱)이 각기 동국대 미대 교수와 조각가이며, 죽은 동생의 아들(병재)도 서양화가다.

오승우의 신 십장생도 = 주황색 윤곽의 산, 구름, 달, 소나무을 비롯해 보라색 사슴, 학, 바위나 녹색의 대나무, 거북, 불로초 등 색조가 밝고 경쾌하다. 사슴, 학은 잘 그려지지만 동그란 거북이나 사군자의 대나무는 그리기가 수월치 않다. 자유롭게 원근을 무시한 채 학과 거북을 하늘에 배치하거나, 상상의 불로초를 구름처럼 묘사한다. 원시적이면서 고상함이 돋보이는 보라-노랑의 보색 대비 등 색과 이미지에서 새로운 화면을 추구한다. 70대 내 나이야말로 화가로서 오랜 경험을 토대로 최상의 무엇을 쏟아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심각한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던 53세때 술 담배 중 하나는 꼭 끊고 운동해야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의사 처방에 따라 담배를 끊었다. 그후 25년여 매일 아침 수영장을 찾아 40분간 쉬지않고 1㎞를 수영해온 덕분인지, 요즘도 아침엔 맥주 한잔 들이켜고, 두 아들이나 미술인 전뢰진, 김일해, 정우범씨, 극작가 신봉승씨와 만나면 폭탄주도 마신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