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세계를 3월30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혼자 오지 않았다. 그의 일본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무나카타 시코(1903∼1975)가 함께 와있다.‘최영림·무나카타 시코’전은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스승과 제자가 그림으로 조우하는 자리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전시는 두 작가의 유사점과 차별점을 집중적으로 짚어보는 데 의미를 뒀다.

덕수궁미술관 기혜경 학예연구사는 “두 작가는 전통에 근거한 에로틱한 여성 이미지를 구현했다는 점에서는 닮았으면서도 엄연히 변별성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영림이 토속적 민담과 설화를 근거로 한국적 해학미가 가미된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다면, 무나카타는 대상의 패턴화를 통해 장식적이면서도 화려한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표현했다는 부연설명이다. 최영림의 에로티시즘에는 토속적 건강미가, 무나카타의 에로티시즘에는 다분히 감각적인 뉘앙스가 실려 있다.

‘훑어보기’를 넘어 비교감상이 전제된 ‘깊이보기’를 배려한 이번 전시에는 두 작가의 유화, 판화, 드로잉 등 모두 120여점이 나와 있다.

“화면 속에서 토담벽 같은 느낌이 우러나오길 바랐다.”는 생전 최영림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은 금방이라도 황톳물이 묻어날 듯 질박한 마티에르로 충만해 있다.

진흙과 모래를 혼합한 마티에르의 토속미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난분분한 꽃잎이 단박에 가슴에 바람이 들게 만드는 ‘꽃바람’, 새색시를 훔쳐보는 신랑과 수줍은 각시가 있는 해학적인 혼사 그림 ‘경사날’, 포도밭 아래 남녀의 뜨거운 정념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낸 ‘포도밭 사연’ 등이 그들. 수려하기까지 한 토속미에 취해 관람객들은 작가를 잊고 있었던 무심함을 탓하게 될 듯싶다.

기실 국내 화단에서 그를 조명하는 작업은 거의 없었다. 평생 붓을 놓은 적 없이 부지런히 작품활동을 했으나, 작품을 잘 팔지 않았던 작가는 작고 직전에 작품들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하지만 1985년 기증 유작전이 열린 이후 대표작들을 망라한 전시는 마련되지 않았다.

무나카타 시코는 일본 유학시절의 최영림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전통문양 등을 소재로 특유의 장식미를 현대감각에 맞게 해석한 무나카타는 베니스비엔날레와 상파울루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세계적인 판화 작가. 최영림은 1930년대에 그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나, 한참 뒤인 1960년대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그 영향을 화폭에 녹여냈다. 전설, 불교 등 전통 소재에 착안한 스승의 작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오랜 연구를 거쳐 체화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작풍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부대행사도 다양하다. 예비대학생을 위한 교양미술아카데미(2월19∼23일), 초등생들을 위한 토요미술 체험활동(전시 중 2·4주 토요일)과 ‘나만의 작품 만들기’, 미술치료 클리닉 등이 준비됐다.

설 연휴기간에 한복을 입고 가면 무료입장. 설날 하루 동안은 누구나 무료 입장할 수 있다.(02)2022-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