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비아냥’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대학생 때 불상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사람이 만드는 아이콘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깨달았어요. 불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숙취 속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틀어놓고 낄낄대면서, 껌도 씹으며 불상을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상 앞에서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수천번 절을 하고요. 전혀 경건하지 않게 만들어진 불상을 앞에 놓고도, 믿음의 대상이 눈에 보인다는 이유로 안심하는 사람들의 허상을 봤어요.”

조각작품 ‘플레이어13’을 봐도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고 생각이 많은지 알 수 있다. 미식축구 선수가 공을 왼손에 쥐고 돌진할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헬멧 속 얼굴을 보니 흑인이다. 등번호 13은 미국을 상징한다. 선수의 등엔 오토바이 배기통 같은 것이 달려있고 배기가스도 나온다. 선수의 무릎 아래는 받침대에 박혀 있다. 이 모든 요소에 작가의 의도가 있다.

“결국 땅따먹기 싸움인 미식축구는 전형적인 미국식 발상을 뜻합니다. 흑인인 운동선수는 백인에 의해 종마로 부려지는 소수민족을 보여주죠. 끊임없이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엔진과 거기서 나오는 가스는 사회의 독으로 작용합니다. 선수의 가슴엔 심장이 아닌 조악한 엔진이 있습니다. ‘열정적 가슴을 소중히 기억한다’고 여론은 선수를 치켜세우지만 실제로는 체스판의 병졸 역할을 할 뿐인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동상처럼 박혀있는 슬픈 영웅상이죠.” 의미부여로 가득찬 작품 같지만 배기통에서 나오는 하얀 가스가 선수를 덮을 때면 안쓰럽고 슬픈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의 시선은 이데올로기를 신봉한 뒤끝에 남은 회한과 허무도 비춘다.

실제론 키 20㎝ 남짓한 김일성 미니어처를 카메라로 벽에 크게 비춘다. 그 옆엔 나무 인왕조각이 피에로 가면을 쓰고 확대된 김일성 영상을 지킨다.

“뻥튀겨진 김일성 장군을 지키는 우스꽝스러운 가면의 인왕조각은, 조롱의 대상이 된 이데올로기와 여전히 그것을 놓지 못하는 사람을 비꼰 것”이다. 작가가 살면서 느끼는 개인적 공포감을 주제로 한 작품 ‘패닉 디스오데리우스(공황장애)’ 시리즈 네 점도 처음 선보인다. 아무도 없는 벌판인데도 두려움에 떨며 나무 뒤에 숨어 몸을 사리고 있는 작가 자신을 보여주는 영상물은 나약한 자아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영상작품으로 주목받아온 작가는 2005년 영상작품 ‘화이트하우스’로 해외에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 20달러 지폐 뒷면을 크게 애니메이션화해 지폐안에 그려진 백악관 벽을 한 사람이 흰색 페인트로 지워가는 영상을 담은 작품으로 미국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이것으로 유명해졌지만 ‘돈작가’라는 타이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 다양한 아이템을 고민했다고 한다. 3년 만에 국내에서 연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들 중에서 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1점뿐이다.

소재에 다양한 변화를 주면서도 간단한 요소로 메시지와 감동을 동시에 만들어 내는 비결은 다음과 같은 말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요즘 한국에선 사물을 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리는 극사실주의 형식의 작품을 너무 높게 평가해 주는 것 같습니다. 수행하듯 작품에 공을 들였다는 건데요, 서구 미술시장에선 조수를 시켜 만든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쉽게 쓱쓱 그린 제프 쿤스의 작품 등이 오히려 인정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콘셉트이지 형식이 아니에요. 저는 형식의 측면에서 극사실주의를 쫓아가는 유행을 비판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내용적 측면에서 극사실주의를 추구했다는 뜻에서 전시 제목을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했습니다.” 3월9일까지. 입장료 일반 3000원. (041)551-5100

〈천안|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